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면 갈수록 기고만장, 안하무인, 숙일줄 모르는 벼(RICE) 같은 이문세 꼬라지 보기 싫어서 만약에 추모공연이 있다해도 (당연히 이문세도 출연 100% 일것이므로) 갈까말까 망설임을 주었던 이영훈 추모공연이 이번주 목요일에 열리는군요. 왜안하나? 그럴리가 없는데 한눈팔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았습니다. 허겁지겁 급한마음에 달려가 보았습니다만 현실은 매진.


다이고로 사춘기 시절의 가장 소중한 감성중 하나였던 추억의 죽음(졸라 거창하지만 뚝심있게 나불거려봤음...)을 어떻게든 추모하고 싶은 오기(?) 가 결국 무의미해져 버렸습니다. 소년 다이고로의 감수성을 햄버거, 피자같은 음악만 졸라 쳐먹는 요즘 불쌍한 비만키드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찌워 주셨던 이영훈 선생님 부디 암없는 천국에서 행복하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 타버린 숭례문에, 지 자식을 불태운 계모에, 어이없게 빨리 떠나신 김창익님 소식에...정초부터 심난한 일들의 러쉬입니다. 맙소사...오늘은 출근했더니 이영훈 선생님의 별세 소식에 뒤통수 강스파이크로 제 눈알이 튀어나오게 합니다. 앞선 사람들 보다 좀 더 애정이 있어서 눈물까지 핑돌았습니다.




이문세 3집 (1985)


이때부터 이문세라는 가수가 슬슬 발동걸렸던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난 국민학생이었구나...) 제 블로그를 통해 자주 나불거린 적이 있지만 당시 친구의 집에 놀러갔었는데 (당연히 우린 둘다 서로 초딩이었음...) 그 친구가 지 워크맨으로 '난 아직 모르잖아요' 를 눈을 감고 굉장히 진지하게 불렀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얘~! 우린 아직 어린이야...어른들의 노래를 부르면 안돼...' 라고 소심하게 속으로만 수없이 외쳤던게 이영훈 선생님의 곡들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B-Side 끝에 (그리고 건전가요 트랙 바로 앞에) '그대와 영원히' 가 포진해 있었습니다만...악착같이 히트(!)를 했었던 기억도 나고, '난 아직 모르잖아요','휘파람' 도 굉장히 크레이지쌕시쿨~한 곡이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을 나중에 제대로 들었을 때 '소녀' 라는 곡을 들으며 받았던 충격은 정말 엄청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소년이었던 제가 이 정도였는데 당시 '소녀'팬들은 어땠을까...그런 '소녀'팬들에게 첫 경험을 안겨준, 첫 남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문세라는 가수는 아직까지도 공연만 했다하면 장사 좀 되는 가수로 롱런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문세 4집 (1987)


이 앨범이 나왔을 당시 저의 아버지께서는 재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곁에서 떠나간 사랑(혹은 사람) 과 다가오는 사람(혹은 사랑) 을 지켜보며 철없는 나이에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무심한 자세를 가지는데 큰 도움(!!..)을 준 앨범입니다. 초여름 무렵 밖에서는 미친듯이 소나기가 퍼부어대고 외삼춘의 레코드샵에서 엄청난 볼륨으로 들었었던 '그녀의 웃음소리뿐'의 웅장했던 슬픔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말하면 입아픈 이영훈 & 이문세 콤비의 전국통일(...) 작품.




이문세 5집 (1988)


앞서 말했지만 4집으로 완전 인생로또 터지면서 당시 LP가격이 4,000원대 TAPE가 3,000원대였다면 이 앨범은 LP가격이 5,000원대, TAPE 가격이 4,000원대로 충격과 공포의 가격으로 출시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꼬와? 그럼 사지 말던가?' 식의 하늘을 찌르는 기세때문에 '아,형 너무한거 아니야?' 울며 와사비 쳐먹는 식으로 TAPE를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4집까지 서라벌 레코드에서 발매를 해오다가 (당시 신생이었던) 킹레코드로 이적을 하며 엄청난 계약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싶습니다.


당시에 외삼촌의 레코드샵에서는 TAPE로 손님이 원하는 곡들을 하나에 담아서 녹음을 해서 팔기도 했었는데 이문세의 이 앨범은 어찌나 녹음을 많이 했었는지 녹음용 LP를 2장인가 3장인가 쓰고 버렸던 무시무시한 기억도 납니다. TAPE는 맛가는거 봤어도 LP가 맛이 가는 모습은 이문세 5집을 통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습니다. ㄷㄷ




이문세 6집 (1989)


지금 보면 좀 우스꽝스러운 컨셉이었지만, 그때도 우스꽝스러웠습니다.-_- 역시나 TAPE로 구입을 해서 질리도록 듣고 다녔던 추억이 있고, 당시에 레코드샵을 외삼촌이 하셨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공동구매(....)를 진행했었던 즐거운 추억도 있는 앨범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제가 학교로 들고갔었으니 배송도 엄청 빨랐었죠..아- 그때 이문세를 그렇게 좋아했었던 중학교 친구들은 다들 뭘 하고 있을까?


'옛사랑' 이 들어있었던 7집, '오래된 사진처럼'의 8집 앨범부터는 예전 만큼의 애정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헤비메럴에 오염(ㅋㅋ)되어 가고 있었을 무렵이었기 때문입니다. 뭐 이문세 본인도 슬슬 자신의 대세가 저물고 있다는 걸 실감하셨는지 (변진섭 ATTACK !!!!) 앨범활동보다는 방송활동으로 종목을 바꾸셨던 시기였던 걸로도 기억합니다. 게다가 이후 앨범은 이영훈 선생님과 하지 않았(던 작품도 많아서 산만했)기 때문에 딱히 애착도 없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엇보다도 이 분이 오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겠군요. 물론 저도 지금 몹시 아쉽고 슬픕니다. 청소년시절 제 워크맨으로 수없이 반복되었던 선생님의 곡에 대한 추억과, 선생님이 한국 대중음악에 끼친 시대를 앞서나간 세련되고 아름다운 감수성이 담긴 업적을 저는 잊지 않겠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