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랩소디의 앨범을 들고 나와서 듣는데 아주 귀에 착착 감깁니다.


랩소디 (였다가 지금은 오브 화이여까지 덧붙이신), 이 밴드는 당시 거의 유일하게 좋아했었던 유럽메틀밴드였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들어도 '헬로윈' 이라는 밴드에 감성이 당췌 발기가 되지 않아 유럽메틀밴드 감성 발기부전증이 아닌가 병원에도 찾아가 볼려고 했습니다만, 당시 미국밴드들에게는 왕성한 감성의 청욕(聽欲)을 느끼고 있었기때문에 내 감성의 발기는 이상없어! 라고 넘어가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랩소디라는 밴드를 만났었는데 몇곡을 들으니 희안하게 발기가 되더군요.


마냥 달리는 사운드가 싫었고, 뭐 어쩌자는 의미인건지 알수없었던 초딩시절 동화책 삽화를 보는듯한 판타지풍의 자켓들이 유럽메틀밴드들에 관한 지루함을 느끼는 선입견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켓 뒷면들을 보면 멤버들도 대부분이 곱슬머리였고, 못생겼고, 패셔너블하지도 않았습니다. 막 MTV의 뮤직비디오에서 늘씬한 미녀들과 함께 나왔던 미국출신의 화려한 치장을 한 밴드들만 보다가 느꼈던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한심한) 실망감이었습니다.


그러다 만난 랩소디라는 밴드의 CD를 플레이 시켜보았는데 '어?뭐야? 그냥 또 달리는거야?' 지루함을 느낄무렵 툭하면 나왔던 클래시컬한 멜로디와, (가사를 모르지만 아무튼 뭔가) 비범하게 불러재끼는 보컬과, 비장감 넘치는 코러스가 좋았습니다. 뜬금없이 언제또 클래시컬한 편곡이 끼어드나 기다리며 듣는 재미가 참 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무렵 만나게된 앙그라라는 밴드도 그렇게 듣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제가 당시에 좋아했던 미국밴드들은 지금 온데간데 없고, 심지어는 음악활동이 아니라 괴상한 TV쇼나 하고 있고, 한심한 모습들을 꽤나 접하게 되어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마음이 잘 가지 않았던 유럽메틀밴드들은 (랩소디를 포함해서)지금도 변함없이 자기들의 음악을, 변함없는 구성으로, 변함없는 앨범 자켓으로, 변함없는 유럽시장에서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결같은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그간 제가 유럽메틀밴드를 좋아하지 않았던 (참 한심했던)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됩니다. 음악도 상품이고, 그 상품을 만드는 밴드는 상품성이 있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한결같은 상품성을 가지고 유럽시장에서 통하는 유럽메틀밴드의 상품성과 거기에 호응하는 유럽메틀시장 소비자들의 한결같은(!) 소비습관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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