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지나서 정을 지나서 이제는 의리로 산다는 부부들의 수다에 피식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이 쌓여야 정이 되는거고, 정이 쌓여야 의리가 되는 거니까 그런 말이 나온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크래쉬도 1994년의 저에게는 그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한 팀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다른 헤비메틀 팀들과 비교가 곤란할 정도로 (무대는) 세련되었고, (연주력은) 월등했으며, (팀 컬러는) 우월했다는 게 사랑에 빠진 이유였습니다. 크래쉬에 대한 사랑이 정으로 변한건 이후 나온 앨범들의 꾸준한 만족감 때문이었습니다. 자 이제 정에서 의리로 변하는 단계!



94년에 만난 이 밴드의 데뷔앨범 LP와 CD는 2014년이 되면 같이 살 게 된지 20년이 됩니다. 그리고 20주년을 4년 앞둔 시점에서 이 밴드의 6번째 앨범이 7년만에 발매가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시간들이 숫자 몇 개로 허무하게 요약됩니다만 우리나라 밴드 역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밴드 히스토리입니다. 20년이 되어가는 국내 헤비메틀 밴드가 몇 팀이나 있습니까? 7년만의 새 앨범이 나오기전까지 꾸준한 공연 그리고 팬으로서 꾸준한 관람은 크래쉬라는 팀을 좋아하면서 이제는 의리로 산다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감정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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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쉬의 7년만의 새 앨범은 살 사람은 당연히 살 것이고, 사지 않을 사람은 당연히 (시끄러워서) 안 사겠지만 크래쉬의 팬들에게 그리고 스래쉬의 팬들에게 '여전히' 훌륭하게 어필할만한 앨범입니다. 특히 원년 멤버인 윤두병의 재가입과 그로인한 곳곳에서 잘근잘근 차근차근 빈틈없이 정확하게 난도질하는 파괴감속에 들려오는 그루브감 넘치는 솔로는 '맛'있습니다. 삼겹살을 먹고 넘기는 소주처럼.



좋다, 덜 좋다, 안 좋다, 싫다 등등의 문제를 떠나서 7년만에 발매된 크래쉬의 새 앨범을 들으면서 들었던 가장 큰 느낌은 이렇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절대 이 검을 놓지 않겠다라고 읖조리며 끝없이 한국의 거친 헤비락 씬의 실망스럽고 괴로운 현실들과 사투를 벌이며 걷고 또 걷고, 베고 또 베고있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 작품 속 '무사시'같았습니다. 나타나기 무섭게 사라지고, 사라지기 무섭게 이상한 음악한다고 다시 나타나는 시시한 칼잡이들 속의 레알 '무사시'



미국에서 영국에서 빌보드 챠트에서 그리고 헤비메틀 씬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국내 밴드는 앞으로 계속 나올 것이고, 계속 사라질 것 입니다. 사랑이 쌓여 정이 되기도 전에 사라지는 밴드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입니다. 어느새 좋아하는 감정이 의리가 되어버린 7년이 지났어도 한결같은 크래쉬가 저는 그래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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