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위 날씨인데도 오시겠어요? 라고 밀어내는 듯한 차막힘과 비내림을 뚫고 결국 딥퍼플의 공연장에 도착했습니다. 내한공연은 그나마 동년배 밴드(!)중 꽤나 자주 오신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 인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꼭 봐야겠다는 오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 곡 'Highway Star' 를 듣는 순간 부쩍 약해지신 아버지의 앙상한 종아리를 보는 듯한 회한이 폭풍처럼 밀려왔습니다. 아! 저런!...


이 날의 공연이 그동안 제가 본 공연중 최악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본 공연중 가장 많은 씁쓸함을 주었던 공연이었습니다. 좋아했던 곡들은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가 미시령 고개를 탈탈 거릴때처럼 속도감이랄지 아찔함은 전혀 느낄 수 없어서 안타까웠으며, (굳이 알고 싶지도 않지만) 좋아하지 않았던 곡들을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공연장의 재미도 이 날엔 없었습니다.


보컬리스트 이언 길란에 대한 실망감은 이미 각오를 하고 입장을 한 상태라 예상대로(!)의 세월의 흔적에 쓴 웃음을 지으며 넘길 수 있었지만 저는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모스에 적지 않은 실망을 했습니다. 딥퍼플에 가입하기전 발매했던 솔로앨범들의 촘촘함이나 섬세함을 조금은 기대했었는데 아직은 젊지 않으신가요? 공연 중간중간 전혀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기타 솔로였습니다. 디오의 사망소식으로 우울하던차에 Rainbow in the Dark 와 Man On The Silvermountain 의 잠깐 즉흥연주가 그나마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같은 인간은 나이를 왜 먹는걸까? 나에게 내 자신이 나이를 먹었다고 구박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날은 내가 나이를 먹는 게 싫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부쩍 약해지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듯이 황혼기에 접어든 락스타들의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는 기분은 조금 착잡했습니다. 디오도 그렇고 말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락계의 수퍼-히어로들을 이런 식으로 배웅을 해야할까요? 70년대의 하드롹 수퍼-히어로들이 석양을 등지고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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