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일 제프백의 공연을 보러갔던 날은 정말 저 자켓이 모든 걸 설명해 주는 날씨였습니다. 저 자켓처럼 시커먼 하늘에서 휀더를 든 매의 눈을 가진 기타리스트가 강림했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제프백 선생님의 예전 앨범들에 비해 이 앨범은 정말 편안합니다. 오리지널 곡들이 아닌 익숙한 곡들의 재해석이어서가 가장 큰 부분이겠지만 '한 음을 쳐도 절대 대충 치지 않겠다' 라는 무시무시한 예민한 감성과 연주로 채워졌던 이전 앨범들에 비해 확실히 많이 여유롭고 편안하게 들립니다.


이 앨범을 들으며 제프백의 내한공연장을 달렸던 강변북로는 정말 차도 많았었고, 지구 최후의 날이 이따위 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2010년 날씨중 최악중에 최악이었습니다만 가다서다를 반복했던 차안에서도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뭐 공연 시작전에 무사히 도착만 된다면야...' 식으로 차안에서 이 앨범을 듣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심지어 '어쩜 이렇게 제프백 새 앨범 자켓과 똑같은 날씨일까? 신기하다. 분위기가 잘 어울리네' 라는 괴상하고 긍정적인(?) 감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좋은 음악을 처음 들을 때의 기억은 늘 생생합니다. 아버지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신청한 컬쳐클럽의 'Karma Chamelon' 이 라디오에서 (진짜!) 나온다며 테이프로 녹음하시던 기억, 치렁치렁 80년대 미스코리아들 같은 헤어스타일로 열심히 섹스를 노래하던 머틀리 크루의 LP를 두근거리며 빼내 턴테이블에 올리고 첫 트랙을 기다리던 기억...지금도 좋아하는 음악들을 처음 들었을때의 설레임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프백의 이번 앨범은 황사스톰이 서울을 덮었을 때 차안에서 멍하니 어둡고 누런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몽환적으로 들었던 즐거운(...) 기억으로 앞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네, 음악은 제가 주연인 영화의 OST입니다. 제프백의 이 앨범은 2010년 강변북로에서 최악의 황사를 맞이하며 차안에서 들었던 제 인생의 한 장면에 삽입된 OST로 앞으로 계속 떠오를것 같습니다.








'난 이 관람 반댈세!' 라고 외치는 듯한 지옥에서 온 황사스톰을 뚫고 공연장에 도착한 시간은 6시 40분, 7시에 칼같이 시작하니 빨리빨리 입장하라고 외치는 스텝들의 목소리에 '에이 설마~ 유도리는 있겠지' 라는 생각에 여유부리고 있었는데 맙소사 정말 7시에 바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공연을 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당연한 사실이 이번처럼 어색하기는 또 처음이었습니다.


공연장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데 이미 제프백 특유의 푸른 하늘 은하수같은 기타톤이 빵빵 울려대고 있었습니다. 공연장안으로 들어가자 천문대의 여름 밤하늘 별자리쇼를 보는듯한 아름다운 일렉기타 한음한음들이 제 귓속으로 우수수수 떨어졌습니다. 티켓값이 9만9천원이었는데 이날 공연의 제프백의 기타로 쏟아진 9만9천개의 한음한음들이 모두 정말 보석이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나 제스츄어를 간단히 하시고는 한 곡 끝나면 바로바로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쿨한 공연 구성도 좋았습니다. 사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연설에 히죽대고 박수쳐주는 것보다야 연주를 들으며 박수를 치는 게 훨씬 공감이 가기도 할테고 말입니다. 수록곡들은 예상대로 최근 발매된 Ronnie Scott 라이브 앨범과 Emotion & Commotion 앨범에서의 연주가 많았습니다. 총 22곡을 거의 2시간동안 쉬지 않고 연주해주셨네요.






올림픽홀이라는 공연장은 처음 가봤지만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제프백 음향스텝이 최적화를 시킨건지는 모르겠지만 늘 보러갈때마다 불안한 체조경기장보다 만족스러웠습니다. 4월에 내한공연을 오시는 게리무어도 이곳에서 해주셨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나이가 많으시니까 언제 볼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날 공연을 보고는 아! 당분간은 그런 걱정을 안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너무너무나도 정밀하고 아름다운 연주에 "저 혹시 선생님도 시간은 거꾸로 흐르시는건가요?" 라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노는 재미가 있는 공연이랄지, 보는 재미가 있는 공연은 아니었지만 듣는 재미가 있는 공연으로서는 정말 최고였던 공연이었습니다. 꼭 한번 더 보고 싶은 공연입니다. 제프백 선생님도 한국팬들이 한번 더 보고싶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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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블로거 Ultarfunk 님의 블로그를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웃순례(..)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헉! 오매 뭐여 이거 씨발~! 이건 질러줘야해~!' 하고는 바로 구입한 백두산 베스트 앨범, 작은 거인, 그리고 시나위의 앨범들입니다. 무엇보다 반가웠었던 것은 작은 거인의 앨범...어린 시절 머틀리 크루가 최고인줄 알고, 머틀리 크루가 제일 멋져보여서 당시에 한창 나오고 있었던 국내 밴드들의 저 앨범들은 쪽팔린다며 무시했었던 (이런 된장할) 기억이 있던지 십여년후... 이제는 좋아도 어떻게 사야 하는지 몰라 발만 동동구다가  사게 되니까 마냥 좋아하는 이 죽일 놈의 간사한 심리!!!


'횽, 이게 뭐셈? 왜 이런 게 좋으셈?' 라고 고개를 갸웃갸웃 거릴 꼬꼬마 음악 좋아하는 동생들이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네들도 나이 쳐먹어가면서 꼭 한번은 조우하게 될 앨범들임은 분명할텐데 과연 그때도 저처럼 이렇게 다행스럽게 구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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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지난 주말 동네 횽아를 불러서 술퍼마시며 같이 들었던 앨범들. 동네 횽아는 Jeff Beck의 "Scatterbrain" 이라는 곡의 추억에 대해 말하고, 저는 Red Hot Chilli Peppers의 "Falling Into Grace" 라는 곡으로 응수(..)합니다. 더불어 신중현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한 사랑과 평화의 '잊어야 한다면' 이라는 곡 속의 '최이철'의 죽이는 기타솔로에 대해 즐겁게 수다를 떨었습니다. 술도 있고, 음악도 있고 집에서 그렇게 놀다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습니다만 일어나면 개판이 된 술상과 이것저것 빼서 들은 CD들을 정리하는 게 몹시 귀찮다는게 단점입니다..




(좌) Grateful Dead "Live / Dead" (우) Jeff Beck "Guitar Shop"


며칠전에 산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이라는 책을 룰루거리며 (룰루비데는 없지만) 화장실에서 읽다가  똥줄이 콱막히면서 "헉!" 하고 헤어진 옛 연인과 조우하는 듯한 난처함을 느끼게 되었으니 바로 그레이트풀 데드의 "Live / Dead" 앨범 때문이었습니다. 산다 그래놓고 몇년을 씹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씹어버렸는지, 시간이 이렇게 흐르게 됬는지는 정확히 원인분석이 불가능하지만 아무튼 희안하게(그것도 화장실에서!) 몇 년만에 책속에서 이 앨범과 조우를 하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안 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래저래 찾아보던중 중고음반판매몰인 한 사이트에서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 이 앨범을 발견했을때의 난감함이란...('어쨌든 사야될 앨범은 반드시 사게 되는구나...' 의) 중고앨범이라 굉장히 나이스한 가격 (8,000원) 도 그렇고, 도착한 후의 앨범을 상태를 보니 그저 비닐하나 입지 않은 차이말고는 다른 점은 못느끼겠더군요. 아주 깨끗했습니다. 뭔가 굉장히 돈이 남으니 좀 더 사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내 친김에 제프백의 "Guitar Shop" 앨범까지 샀습니다.


...그래도 다행인점은 헤어진 연인과의 조우는 과거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지만, 헤어진 구매 리스트의 앨범과의 조우는 언제든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 일겁니다....굳이 헤어진 연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음~ 영화 혹은 DVD, 멋진 양복, 멋진 차, 멋진 여자, 맛있는 음식, 맛있는 섹스등등은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지루해지고, 빛이 바래고, 유행에 밀리고, 실연이 오기 마련인 각각의 유통기한이 있지만 좋은 앨범 한장은 일단 언제든지 과거로도 돌아갈 수 있고, 미래의 감성의 든든한 후원자도 되어주니 악착같이 돈을 주고 현재의 구세대 음원매체인 CD에 이렇게 어줍짢은 운명론(!) 들먹거리며 '사야될 CD는 반드시 사게 된다' 고 나불대며 집착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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